책 <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만 오늘 밤은 어떡하나요 >

기억에 남는 구절
- 세상에는 슬픔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공평하게 하루가 주어져도, 누군가 웃으면 누군가 울게 된다. 오늘 내가 웃고 있다 해서 타인이 슬퍼할 때 힐끔거리지 않는다. 건네줄 휴지도, 용기도 없어서 무심한 척 시선을 거둔다. 기둥을 붙잡고 슬픔을 토하고 있는데, 애교 범벅된 통화 소리가 등을 두드려댔다. 다들 웃고 있는데 나만 볼품없이 울고 있는 하루가, 누구에게나 온다. 19p 〈슬픔 보존의 법칙〉
- 나의 결핍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결핍형 인간은 언제나 앞서간다. 눈물 젖은 다이어리를 덮으면 내일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 말일에 월세를 내기 위해 한 달의 시작부터 일한다. 쌍꺼풀 없는 눈을 좋아하는 당신을 만나려고 태어날 때부터 준비했다. 32p 〈결핍형 사랑〉
- 내가 먹는 약은 약국에서 처방하지 않고 병원에서 직접 받았다. 병원 데스크에는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고 결제하는 방법이 적혀있다. 보험 혜택을 받지 않으면 기록이 남지 않는다. 비용이 배로 들지만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는 걸 아무도 알 수 없다. 무엇을 숨겨야 하고 무엇으로부터 숨어야 하는 걸까. 61p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이면 탈모라도 생기나요〉
- 바른 젓가락질 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나. 허리 꼿꼿이 펴고 원하는 행복만 쏙쏙 건져가야지. 숟가락으로 국물이나 퍼먹을 때 고기반찬 다 휩쓸어야지. 단백질과 지방과 사랑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야지. 103p 〈무심코 던진 숟가락에 맞아 죽을 확률〉
- 사이렌 소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닮아있다. 아주 큰 왕고양이가 앙탈 부리는 소리 같다. 왕고양이는 잠시 울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두려움의 갑옷과 무기는 우리가 제공했다. 작고 초라한 걱정에게 제 몸집보다 큰 칼을 건네줬다. 우리가 먼저 건네줘 놓고선 ‘곧 피투성이가 될 거야’하며 두려워한다. 두려움으로 진화한 걱정은 신이 나서 핸드메이드 갑옷까지 착용한다. 갑옷에 붙어 있는 택에는 ‘made in 상상’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끝까지 찾아온 두려움 때문에 악몽을 꾼다면, 오늘 밤에는 꼭 그의 머리채를 잡고 알몸으로 만들어야 한다. 두려움이 더 나대지 않게 주기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왕 고양이는 당신을 해칠 수 없다. 왕 귀여울 뿐이다. <괜찮냐옹>
- 내가 가진 두려움을 객관적으로 직면하는 훈련이다. 두려움이 입은 갑옷을 벗기고 무기도 빼앗는다. 두려움의 알몸은 생각보다 볼품없다.
- 습관처럼 잔고를 확인했다. 50만 원 밑으로 내려가면 작은 불안이 번식했다. 나는 이 작은 원룸을 지키지 못할까 봐 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월세를 내기 시작한 후, 돈이 되는 일을 거절하기 어렵다.
- 노동에 비해 적은 금액을 준다는데도 돈을 만질 기회가 오면 반사적으로 하겠다는 말이 나갔다. 책임감은 돈에 비례해야 하는데, 책임감만 과했다.
적은 돈이라도 고정수익에 플러스알파가 생기면 마음이 편하다. 아픈 허리를 주무르며 일당을 확인한다. 갑자기 알바에 잘리더라도 한 달 월세는 낼 수 있으니 안심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 싶다가도 사지가 멀쩡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노동을 해서 먹고살 수 있으니까.
맨땅에서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않고
노동만으로 살아가는 일은 경건하다.
뻐근한 근육통은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내 집이 아닌 내 집은 은신처처럼 평온하고 때론 무인도처럼 막막하다. 내가 안에서 문을 잠그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만약 나에게 사고가 나서 응급실에 간다면? 달려 올 어른도 없다는 게 실감 났다. 마음이 시큰하다. 울지는 않는다. 청승 떨기엔 부족한 서사라는 걸 안다.
작은 방을 지키려 힘을 다하다 보면 작은 생채기에도 마음이 약해지는 날이 있다.
가정집에서 풍기는 생선구이 냄새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궁상떨지 말자고, 스스로 전한다. 우울함을 신발에 욱여넣고 장을 보러 간다.
과일 깎는 칼로 야채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숟가락으로 대충 볶는다. 야채 볶음밥은 내가 나를 애틋하게 대하는 방법이다. 유통기한 임박한 4+4 요플레는 나에게 주는 상장이다.
나는 내가 애틋하다. 애쓰는 내가 따뜻하다.
집 앞 마트에서 꼬박 모은 적립금으로 우유 한 통을 샀을 때 나는 스스로가 꽤 마음에 들었다. 작은 행복을 차곡차곡 모아서 한 달 살기를 해낸다.
근육을 움직이며 에너지를 쓰고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정직한 근육통은 불안을 없애준다.
습관적 가난이 아직 몸에 배어있다.
유럽 한 달 살기 비용을 검색하며
이게 몇 달 치 월세야, 생각한다.
팔자가 진짜 꼬였나, 싶은
억울한 순간도 있지만.
나쁜 놈들이 더 잘 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순수하게 노동하고 돈을 벌며 살아가는 내가
꽤 맘에 든다.
나는 가난이 준 열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앞으로도 행복 적립에 열렬하게 임하겠다고 다짐한다. 작은 행복을 억지로라도 쌓아가다 보면 하얀 행운 한 통 크게 쏟아지겠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
-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받을 때면, 내가 타인처럼 느껴졌다.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한 적이 드물었다. 평생 ‘나’로 살았지만 정면으로 ‘나’를 마주 보는 건 처음이었다.
- 미국에 계신 산타 할아버지께산타 할아버지, ‘격려상’은 없나요?
- 제 사랑이 격려가 필요한 상태라서요.
- 남모를 선행도 안 했고 가끔 울기도 했다. 착한 사람 아니어도 선물은 받고 싶다.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 그 날은 꿈을 꿨다.제가 격려상을 주문했는데, 배송지연이 떠서요. 참가상으로 교환하려고요. 네? 솔드아웃이라고요? 아니 사람들이 밥 먹고 사랑만 한다던가요? 그러면 물량을 넉넉하게 준비하셨어야죠. 근데 왜 울면 안 돼요? 한강이라도 넘칠까 봐요? 힘든 거 참다가 원형탈모 생기면 어성초 샴푸라도 보내주시나요? 한국 사람이 어떻게 1년 동안 한 번도 안 우냐고요! 아니 잠깐만요, 선생님, 산타 선생님!
- 뚜뚜뚜…
- 안녕하세요. 쿠팡 … 아니 산타맨이시죠?
- 당신과 나의 인생이 책갈피가 자주 꼽히는 책이었으면 한다. 애틋한 마음으로 모든 문장을 어루만지고 싶다. 울고 웃으며, 밤새 읽고 싶다. 132p 〈from. 우리〉
- 엄마는 늘 내 의자를 비누로 씻어준다. 때를 밀 때 구석구석 싹싹 밀라며 충고한다. 6살 때도 16살 때도 26살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내 행동이 미심쩍은 모양이다. 여전한 잔소리가 싫지 않아 몰래 웃는다. 등을 밀어 달라고 하면, 엄마는 등만 밀지 않는다. 어깨와 옆구리도 밀어준다. 역시 내 때밀이가 못 미더운 것이다. 26살 딸의 팔과 옆구리 때를 밀어주는 엄마. 창피해하지도 않고 나는 그 손길을 몸에 새겨본다. 56살이 되어도 이 손길에 웃겠지. 137p 〈목욕탕 가고 싶을 때 보려고 쓴 글〉
- ‘모든 시작은 불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 가끔은 나에게 편지를 쓴다.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열렬한 위로와 응원이 담겨있다. 번져있는 글자는 낯설지 않다.
- 오늘이 마지막 페이지라면 - 모든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깝고 주변에 널려있다. 내 삶엔 변수가 많다. 늘 계획하며 살았으나 삶은 보란 듯이 내 계획을 깨버린다. 점심 먹고 카페에 가다가 죽을 수도 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만 자주 까먹는다. 보험 광고를 보거나 주변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쳤을 때. 공포가 피부에 와닿으면 내일이 간절해진다. 죽음 앞에 평온하긴 힘들겠지만, 유서를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다음 계절을 살아갈 수 있도록.
- 영원한 건 세상에 없으니까. 헤어짐도 영원하진 않을 거야.






목차
1부 하찮은 밤에도 별은 뜨고 배도 고프고
슬픔 보존의 법칙/ 밤을 보내는 자세/ 19,870원/ 가심비 인간/ 버킷리스트/ 달력을 넘기며/ 결핍형 인간/ 결핍형 주거생활/ 결핍형 사랑/ 보통 날의 전시회/ #소통 #럽스타그램/ 괜찮냐옹/ 땀 냄새는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
2부 지갑에 비상약을 넣어두는 밤
삶원색/ 어떤 상처는 마음에 고인다/ 마음 응급 처치/ 비상 달걀/ 달걀 응용 기능사 기출 문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공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이면 탈모라도 생기나요/ 로맨틱한 정신질환/ 바다 위에 하얀 집/ 키가 큰 위로/ 꼴찌의 시선/ 휴지로 만든 거울/ 자기 전 30분/ 눈뜨기 전 30분/ 지갑이 닳도록/ 그 해 나의 소원/ #정신과의원 #후기 #소통
3부 낡은 이불로 사랑을 덮는 밤
나는 사랑을 사랑했지만/ 마법은 호그와트에/ 미국에 계신 산타 할아버지께/ 그 날은 꿈을 꿨다/ 나만 안 되는 사랑/ 짝없는 사랑/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머문 자리/ 가난한 사랑/ 사랑의 온도/ 사랑의 도피/ 할아버지께/ 무심코 던진 숟가락에 맞아 죽을 확률/ 은영이 예쁜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사랑의 형태/ 무상 수리는 어렵습니다
4부 잠들지 못한 당신 곁에
닿을 수 있다면/ 온 마음을 뻗어서/ 연애 편지/ 이혼 편지/ 이모의 유리구슬/ 헤어지자/ 도망가자/ to. 나/ to. 당신/ from. 우리/ 오늘이 마지막 페이지라면/ 마지막 편지
목욕탕 가고 싶을 때 보려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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